2014/10/12
얼큰한 소고기무국
철마에 소고기가 맛있다고 하여 먹으러 갔다가 가게를 나서면서 한우 암소 양지와 스지, 불고기를 사왔다.
엄마 말씀으로는 경주에서 사오신 한우가 옛날 그 감칠맛이 나서 맛있다 하시면서 여기도 꽤 괜찮을거라 하셨는데 국 끓여보니 정말 여태 먹어본 양지 중에 가장 맛있었다.
여태 이것 저것 먹어보니 한우 암소가 국물맛이 좋아서 코스트코나 인터넷의 자주 사는 곳 등 암소 파는 데서 늘 샀는데 이번에 산 것이 가장 낫다니.. 했고.
사람 입맛에 간사해서 좋은 걸 먹기 시작하면 낮춰가기는 어렵고 계속 가장 좋았던 것을 찾게 되거나 덜 한 걸 먹으면 비교하게 되는데 이걸 어쩔까 싶기도 했다.
이런 마음이 왜 생기나 생각해봤더니 갑자기 드는 생각이 이런 것은 일종의 인지부조화가 아닌가 싶다.
사람에게는 보편적으로 자기가 선택한 것(현실)이 만약에 기대만큼 좋지 않거나 다른 더 좋았던 것을 선택했었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들 경우,
자신의 선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자기가 선택한 것이 최선이고 최고였다고 믿으려고 하고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인지부조화로 자신이나 자신의 선택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없는 나쁜 점이 크지만 일종의 인류의 감정적인 생존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이번 식사의 어떤 점이나 식재료의 어떤 점을 이야기 하다보면 자꾸 이번에는 어떤 점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여러번 반복되다보니 내가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만약에 나쁜 점이 있었어도 의도적으로 현실을 무시하고 내가 잘 선택했다고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말하며
인지부조화를 통한 자기합리화를 수동적으로 겪고 라기 보다.. 능동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기대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내 선택이 어떻게 잘못 되었나 점검할 필요가 있는데
늘 이걸 잘했네 맛있네 하다보니 스스로를 더 의심하도록 늘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나름대로는 나에게 가차없이 평가한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나는 내게 가차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너그러워진다는 것을 잊게 된다.
이렇게 고기 하나를 사면서도 좋은 것을 샀다고 이야기 하려다가.. 해도 될까 싶다가..
그래도 내가 선택한 것이 좋지 않았을 때는 좋지 않다고 이야기를 모두 다 하지는 않으니까 일종의 부조화인 것 같기도 하고..
철마에서 소고기 좀 끊어 온 것 가지고 별 소릴 다하고 있다.
얼큰한 경상도식 소고기무국은 몇 번 올린 적이 있는데 늘 만들던 때와는 다를 것이 별로 없었고, 고기는 꽤 괜찮아서 맛있게 잘 먹었다.
사용한 재료는 4~6인분으로 국밥으로 먹기에는 4인분 정도 될 것 같고 반찬 있는 밥상에 국으로 먹으면 6인분 정도 될 것 같다.
한우 양지 약 500그램, 무 큰 것 3 분의 1개,
물 약 2리터 (에 다시마를 넣은 다시마육수), 다진마늘 듬뿍 1스푼, 고운 고춧가루 듬뿍 1스푼, 고춧가루 1스푼, 국간장 4스푼, 대파 큰 것 1대, 숙주 200그램
예전에도 자주 올린 내용인데
간은 국간장으로 물을 부은 양에 따라 조절하는데 국간장의 염도가 보통 약 25%정도 되니까
국간장의 염도가 25%라 칠 때 국물 염도를 1%정도 맞춘다면
국을 끓여서 최종적으로 될 국물의 양 1리터당 약 국간장 42미리 (3스푼 조금 못되게)를 넣어야 산술적으로 맞다.
1%면 사람에 따라 짜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0.7%에 맞추면 30미리(2스푼)가 필요하다.
1시간동안 서서히 국물이 졸아드니까 졸아들 양을 고려해서 물을 넉넉하게 넣고 만들면 간이 맞고,
염도를 생각했다 하더라도 입맛은 다들 다르고 육수에도 염도가 있고 간장의 염도도 다 다르니까 대략적인 양만 생각하고 마지막에는 간을 맞춰야 간이 맞다.
한우양지는 살짝 헹궈서 굽기 좋도록 겉의 물기를 닦고 무는 나박나박 썰어서 준비했다.
소고기를 삶으면서 무는 썰고 숙주 다듬고.. 마늘, 국간장, 대파 역시 소고기를 충분히 익힌 다음 쓸거니까 천천히 준비했다.
냄비에 양지를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다시마 우린 물을 아주 넉넉하게 부은 다음 끓이기 시작했다.
국을 끓일 때에는 국에 들은 재료와 육수가 잘 어우러져야 하는데 물은 어차피 100도에서 더 올라가지 않으니 굳이 센불에 펄펄 끓도록 하지 않아도 된다.
강한 불로 재료의 변형을 줄 필요도 없고, 너무 높은 온도에서 끓이면 유화가 일어나 국물이 더 탁해진다. 끓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중약불에 하면 충분하다.
특히 뚜껑을 덮은 경우에는 내부의 온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고 열이 내부에서 대류하기 때문에 더욱 더 높은 온도에서 끓일 필요가 없다.
덩어리의 고기로 국을 끓였다면 내부까지 익으면서 고기에서 국물이 더 배어나오기 때문에 오래 끓일수록 국물맛도 더 좋아진다.
소고기 육수가 나는 동안 무를 썰고 숙주나물도 다듬고 마늘도 다듬고 다지고 하니 1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육수에 고운 고춧가루와 그냥 고춧가루, 다진마늘, 국간장을 넣고 무가 푹 무르고 고춧가루가 겉돌지 않으면서 색이 잘 들고 간이 맞도록 40분정도 중약불에 끓여냈다.
무를 익히면서 중간에 고기를 건져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식으면 얇게 썰어서 다시 국에 넣었다.
썰면서 맛을 봤는데 부들부들한 것이 맛있었다..
고기는 썰어서 다시 국에 넣고 무가 스푼으로 가볍게 눌러도 으깨질 정도로 익으면 마지막으로 대파와 숙주를 넣고 조금 더 끓이다가 간을 보면 완성.
중간에 봐서 국물이 모자라면 팔팔 끓는 물이나 생수를 추가하고 간을 보고 싱거우면 국간장을 조금 더 넣고 마지막에는 간을 보고 필요에 따라 소금을 약간 넣기도 하는데
4~6인분 정도 되는 양이니까 다시 끓여 먹을 것을 생각해서 약간 싱겁게 완성하는 것도 좋아한다.
국물은 간도 딱 맞고 양도 적당한 수준인데 건더기가 그득했다. 그게 국물이 적다는 거지.... (라고 인지부조화 타파! ㅎㅎ)
그런데 좀 건더기가 많게 끓이는 것이 국물 맛이 진해서 간을 보고 만들다 보면 꼭 이렇게 건더기가 많은 국이 된다. (결국 자기 합리화!ㅎㅎ)
완전 보드라운 양지에 얼큰한 국물과 잘 으깨지는 무, 숙주까지 내가 딱 좋아하는 소고기무국이었다.
실제 국물은 아래에 더 가까웠다.
남은 국은 볼에 넣고 완전히 식혀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3일 후에 먹었는데 국만 딱 데워서 밥에 말아 먹으니 누가 해 준 것 같고 좋았다...(는 단골 멘트)
해주긴 누가 해줬겠나... 과거의 내가 해줬겠지.. 국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 둔 과거의 나에게 고마웠다.